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성적표에 발표력이 부족하고 내성적이라는 멘트가 늘 써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랬다. 소풍갈 때도 뒤를 돌아봐서 엄마가 안오면 그 자리에 멈춰서서 울곤 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엄마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도 분리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늘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가면서 성격이 점점 활발해 졌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완젼 천방지축이 되었다. 지금은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성적표의 그 멘트가 늘 나의 컴플렉스처럼 잊혀지지 않아서 아이가 태어나면 밝고 활발하게 키우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들 앞에서 더 오버하고 같이 춤추고, 노래하고, 더 크게 웃었다. 아이들의 친구나 친구 가족을 만나도 더 밝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우리 딸은 나의 내성적인 DNA를 닮아버렸다. 물론 육아서에 보면 엄마 아빠가 가진 여러 기질 중에 우리의 성격으로 표출 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그 여러 기질들이 조합되어 전혀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다고 하지만, 우리 딸은 나의 그 기질을 닮아 버렸다.
물론 내가 우리 엄마한테 하소연하면 " 니 딸인데, 너 닮지. 누구 닮아? 그래도 너보다는 훨 낫다. 걱정마! 점점 바뀌지! "
하고 말한다. 아이가 낯가람과 불리불안이 심해서 성당에 가도 두살때까지는 내 품에서 떠나질 않고, 어디든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우리가 중동에서 살다 보니, 중동사람들이 한국의 드라마, 영화나 아이돌을 매우 좋아해서 우리는 어딜 관심을 받았다. 마트에 가도 사람들이 말을 걸고, 식당에서도, 심지어 아이들한테 귀엽다고 돈을 주거나, 갑자기 와서 볼에 뽀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둘째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더욱 경계를 하곤 했다.
지금 8살이 되면서 아기때보다는 조금 경계심을 풀긴 했지만, 여전히 내성적인 성향은 남아있다. 오늘도 친한 친구랑 놀이터에 가려고 했는데, 친구가 수업 있어서 안된다고 하니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혼자 가서 다른 친구 사겨서 놀라고 했더니 싫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나도 새로운 사람한테 말 걸고, 어울리는 게 쉽지 않은데, 아이가 그렇게 행동하는 건 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싹 바껴서 놀이터 가자고 데리고 나왔다. 다행히 트램폴린에 또래 여자아이가 있어서 같이 트램폴린을 타고, 나는 조금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 가고 그 애랑 친구됐다고 하는데, 기특하기도 하고 너무 몰아세운건 아닌지 미안함과 짠함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서 폭풍 칭찬에 자기 직전인데 라면까지 끓여줬다.
단순한 아줌마!!! 나도 못한 걸 아이라고 잘 할수 있겠는가?! 돌아서면 후회가 된다. 아이가 서툰 상황을 자꾸 만들어서 노출시켜 주는 것도 아이에게 때론 득이 되기도 하지만 실이 될수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감정적으로 아이에게 행동한 게 마음이 걸린다. 내가 싫어했던 나의 과거를 아이가 닮아있는게 너무 싫었나보다. 그냥 아이다운 삶을, 나 또한 그냥 나다운 삶을 살면 되는데, 자꾸 더 나아지고 싶어하는 욕심때문에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하는 행동들이 더 나은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계속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정답이 없으니 나랑 아이들이 같이 바른 정답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 있지 않을까? 내일은 또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까? 내일은 또 내가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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